김영하 소설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맨 처음 떠오르는 책이 '살인자의 기억법'이지만, 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책이 바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김영하가 96년도에 이 책을 처음 발간했으니, 그 당시로는 정말 신선한 발상이었을 것 같다.
난 내가 지금 봐도 소재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김영하가 96년도에 낸 책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게 2005년도에 영화로 리메이크되어서 전수일 감독, 배우로는 정보석, 추상미가 나왔으니 인기 많은 베스트소설이긴 한가보다.. 근데 영화는 안 보고 싶다.. 그만큼 우울할 거 같다.
읽자마자 너무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그렇기도 했고, 저 밑바닥의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다루는 것도 그렇고, 자살하도록 돕는 인간이 주인공 인거하며, 동생의 여자를 빼앗고 섹스하고, 뭐 이런 그지 같은 소설이 있나 하면서도 단숨에 빨려 들어간 거 같다.
책은 또한 명화인 '마라의 죽음', '유디트', ',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라는 대작들을 통해 죽음을 아름답게 묘사했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게 했다.
세상에 내가 다 그림을 찾아보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읽은 것은 소설 읽으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정도로 심취하게 만든 소설 중에 단연 으뜸이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잘 정리가 안된다... 어렵고 난해하다. 근데 작가는 난해한 자살이라는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 게 신기하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든지 '검은 꽃' 등도 소재가 참 독특한데도 술술 읽힌다. 그런 작가의 능력이 부럽다.. 난 단지 소설을 읽고 대리만족하는 것 그뿐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줄거리는 이렇다.
자신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은 자신의 잠재고객을 찾아다니지만, 그렇다고 영업행위를 하지 않고, 협박이나 부탁이나 사은품 따위로 판촉을 하지 않고 그저 대화만 할 뿐이다. 단순히 대화만으로 잠재고객을 실제 의뢰인으로 만든다. 주인공은 "나는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욕망을 끄집어내어 자살하게 만들 뿐이다"라고 말한다. 고객과의 일이 끝난 후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면 강한 인상을 남긴 고객을 글로 남기고, 2년 전 겨울 고객이었던 유디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의뢰인 중에 한 명인 유디트 '세연'은 택시기사인 K와 K의 형인 C의 집에서, K의 어머니의 장례식날 영정 앞에서 섹스를 한다.
K의 형인 C는 동생의 여자, 즉 유디트를 뺏고 그녀와 섹스를 한다. K는 이 사실을 알고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취하지 않으며, C는 유디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
K의 여자를 뺏은 형 C는 어렸을 적 나비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나비를 채집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 타버렸듯이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연인 유디트마저 폭설로 운전이 불가능한 극한의 상황에서, 꼼짝없이 자신과 함께 차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그가 잠깐 잠든 사이 폭설을 뚫고 C의 곁을 벗어났으며, 두 번째 유디트인 미미도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하자고 제안하면서까지 그녀를 붙잡으려 하지만 그녀 또한 C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떠나버린다.
K는 유디트 세연밖엔 없었지만, 유디트의 부재에도 꿈쩍하지 않는 C를 증오하며 그저 자신의 스텔라 TX 택시를 타고 미친 듯이 고속도로를 쏘다닌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주인공을 통한 자살은 아니지만, 아마도 K는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사는 게 지겨운 여자 세연은 폭력적인 엄마와, 술만 마시면 교과서를 찢는 아빠에게서 어릴 적 집을 나오지만, 언제나 그렇듯 맨 처음은 바깥세상이 천국 같아 보여도 어느새 세연은 웃음을 팔고 몸을 파는 업소로 흘러가고, 그 이후로는 희망도 변화도 없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됩니다. 세연은 남자들과 섹스를 하면서 항상 츄파춥스를 먹는데, 그건 일종의 지루한 삶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세연은 남자들에게 주문진에 데려다 달라고 말하지만 막상 떠나보니 별게 없고, 궁상스러운 현실도 전혀 변하질 않고 폭설 속에 고립된 자동차 안에서, 세연과 C는 길고 지루한 섹스 후 도망치듯 그녀는 서울로 돌아와 자살안내자인 주인공을 만난다.
세연은 자살안내자를 만나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살법을 찾을 때 비로소 무기력하던 모습에 사뭇 생기 돌며 신이 나합니다.
이제까지 자기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 적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었던 세연은 여러 방식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가스를 선택하게 되고 그 뒤에 자살의뢰인 미미, 행위예술가이자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그녀 또한 자살안내자인 주인공을 찾아와 고객이 됩니다.
세연과 미미는 그렇게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권리인 자기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행사하는 겁니다.
거기에 세연과 함께했던 C와 K, 미미와 함께했던 C를 통해서 자살하게 되는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나 봅니다. 이 남자나 저 남자나.
자살을 통해서 자기 권리를 되찾는 의미는 뭘까??
난 아직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 삶이 유디트 세연과 같았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내 주위에 혹시 자살안내자라는 사람이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책을 본 후 한동안 서점이나 극장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자주 쳐다본 적도 있다.
그래도 자살을 결심한 의뢰인이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내게 구원일 수는 없었어요.'라고 할 때는 삶의 한 조각 희망을 바라보며 주인공이 그 손을 잡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자살안내인 주인공은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라고 말하며 자살을 유도한다. 주인공은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인공은 '이젠 내가 쉬고 싶다.'라고 말한다. '내 거실 가득히 피어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내 인생은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 하며 죽음을 암시하며 끝난다.
주인공 또한 이런 일을 해서 전염된 건지, 아니면 원래 본인이 자살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역할을 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만약 직업이 자살안내자이면 그 수없이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공감해 주고 돕고 하면 나도 모르게 자살이 어느새 내 코 앞으로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직업의 세계는 다양하지만 이런 직업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소설로 만족하면 좋을 거 같다.
그래도 마지막에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서 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으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길을 가라. 나는 너무 많은 의뢰인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자살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중에 나도 포함하여 열심히 그 길을 가라는 것, 열심히 지겨워도 힘들어도 지루해도 뒤돌아보지 말고 끝까지 살아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이다. 그렇다 인생이 허무하고 단조롭고 힘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끝까지 버티며 사는 게 정답일 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난 황정은 작가의'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렇다.. 인생은 그렇게 계속해보면 되고, 계속 가보면 됩니다..
권리는 자살이라는 곳에서 찾지 말고 우린 일상의 희망적인 삶을 나아가는데서 권리를 찾으면서 오늘도 힘차게 나가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정말 난해하지만 그래도 삶의 저 밑바닥을 훑고 지난 느낌을 어떨까? 하며 공감하면서 이 책도 여전히 적극 추천한다..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약간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특히나 더 강력 추천한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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