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여신과 시인
사후세계로 떠난 단테
1300년경 이탈리아 문학의 최고 시인 단테는 누구도 해보지 못한 신비로운 여행인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순례여행을 「 신곡」이라는 서사시에 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독교적인 여행에서 단테를 인도하는 것은 기독교 성인이나 성서의 인물이 아니라, 로마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라는 사실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틀 안에서 작품을 쓰면서도 로마 문화의 전통에 따른 르네상스 인문주의 작가 단테의 취향과 특성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첫 번째 행선지인 지옥에서 만난 사람들도 고대 위대한 작가들이었고, 그 맨 앞에는 호메로스가 있었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우스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인사를 하고, 그다음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에게도 인사를 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단테는 자기가 그리스와 로마의 위대한 시가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선포하며, 신비로운 체험을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내 기억은 이 모든 것을 틀림없이 기록하리라
아, 무사여, 지고의 지성이여, 날 도우소서!
자신의 기억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남기고 싶어 하는 단테는 무사 여신과 "지고의 지성"을 부른다. 여기서 "지고의 지성"은 단테를 인도할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가리킨다. 이 부름에 응답하여 그들이 단테를 돕는다면, 그는 한갓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비로운 체험을 노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테는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다.
기독교 세계를 노래하는 그리스 신들?
오, 위대한 아폴론이여! 이 마지막 임무를 위해 나를 당신의 재능과 당신이 사랑하는 월계관을 받을 그릇으로 만들어주소서!
단테는 이번에는 "시인들의 아버지"인 아폴론 신을 부른다. 밝고 환한 빛과 태양의 신,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빛나는 예지와 지성의 신 아폴론 말이다. 신의 가호를 받고 자기 노래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단테는 신들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리라고 믿고 있을까?
신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노래를 할 수 없다고 믿기에 간절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기도에는 또 다른 수신자가 있다. 그는 신을 부르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기도를 독자들이 듣도록 하고 있는 것이며 독자들이 '이제 단테는 신들의 가호를 받고 신성한 노래를 하겠구나!'라고 믿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기독교 세계의 천사에게 부탁하지 않고 기독교에 대해 이교인 그리스 신화의 무사 여신들과 아폴론 신을 부른 것일까?
에덴동산을 노래하는 무사 여신
영국의 시인 밀턴도 「실낙원」에서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낙원 에덴에서 추방되는 성서의 이야기를 단테처럼 신성한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교도 신화의 주인공인 무사 여신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다.
인간이 저지른 최초의 거역에 관하여,
그리고 금지된 저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
그것의 맛은 치명적이어서
이 세상에 죽음과 우리의 비통함을 가져왔고
에덴동산도 잃게 하였던 것입니다.
위대한 한 분께서
우리를 회복하고, 행복이 넘치는 그곳을 되찾아 주실 때까지.
노래해 주소서, 천상의 무사 여신이여.....
「실낙원」 제1권
밀턴과 단테는 왜 노래하기 전에 무사여신을 부르고 아폴론을 부르는 것일까?
여기에는 서양 문학사를 관통하는 위대한 전통의 굵은 가닥이 깃들어 있는데 그건 그들이 그 전통을 모방하고 있고, 그들이 존중하는 위대한 시가와 이야기 짓기 전통의 출발점에 서양 최초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있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무사 여신을 부른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분노를.「일리아스」제1권
서양문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서사시 일리아스의 첫 부분이다. 청중이 가득 모인 이야기 마당의 한가운데 호메로스가 등장하며 그는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고, 대신 여신에게 노래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며 이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신이 호메로스의 기도를 듣고 내려와 청중에게 노래를 해줘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은 보이지 않고 신을 부르던 호메로스만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청중을 향해 노래한다.
무사 여신은 누구인가?
호메로스가 불러낸 무사 여신은 어떤 여신이가?
호메로스 다음 세대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무사 여신들에 관해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제압하고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제우스는 고모뻘 되는 티탄족 여신 므네모쉬네와 결합하여 아홉의 무사 여신을 낳았고 제우스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제압한 것은 시간을 압도하는 영원성을 상징하며, 므네모쉬네는 '기억의 여신'이니, 둘 사이에 태어난 무사여신은 결국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기억력'을 상징한다.
호메로스의 기도는 신들에 대한 청원임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거는 마법의 주문이며, 호메로스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활약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노래해도 무사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노래하는 것이므로 인간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실성을 가질 수 있고, 삶의 찰나성을 넘어서는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심어준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수법의 그의 두 번째 작품이 오뒷세이아에서도 그대로 사용한다
사나이를 나에게 말해주소서,
무사여신이여(중략) 여신이여,
제우스의 따님이여,
우리에게도 말해주소서.
호메로스의 전통은 이어지고
호메로스의 뒤를 잇는 서양의 시인들 헤시오도스는 세계의 창조와 세계를 제패한 제우스가 정의를 정립하는 과정을 노래하는데 거기서도 호메로스가 했던 것처럼 무사 여신을 부른다.
무사, 피에리에로부터 노래로 영광을 드러내는 무사여신들이여, 오셔서 제우스를 말씀하소서! 당신들의 아버지를 찬양하면서. 「노동과 나날」
무사, 헬리콘 산의 무사 여신들로부터 우리의 노래를 시작하자. 「신통기」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호 이야기」의 시작도 어김없이 시가의 신의 가호를 간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이보스여, 나는 당신으로부터 시작하면서 옛사람들의 명성을 기억하려 합니다.
폰토스가 입구를 통과하여, 퀴아네아이
바위들을 지나, 펠리아스 와의 명령에 따라
황금의 양털을 찾아 잘 묶인 알고호를 몰았던 사람들의 명성을.
"포이보스"는 아폴론 신의 별명이며 아폴론은 빛과 태양의 신이며 의학과 진리, 예언의 능력을 관장함과 동시에 시가와 예술의 신으로 숭배되어 무사여신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따라서 아폴론의 가호를 입는다면, 시인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일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보여 줄 수 있다.
로마, 그리스를 모방하다
그리스 서사시의 전통은 로마 서사시의 전통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패한 후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기 위해 모험과 전쟁을 감당해야 했던 영웅 아이네이스를 「아이네이스」라는 서사시에 노래하며 "무구와 사나이를 나는 노래하노라"며 아니네스가 그토록 힘든 고난을 겪어야 했는지를 결국 무사 여신에게 묻는다.
무사 여신이여 나에게 그 이유를 말해주소서, 신들의 여왕이
신성을 어떻게 모욕당했기에 속이 상하여
그토록 많은 시련과 그토록 많은 고난을
더없이 경건한 그 남자로 하여금 겪게 하였는지를.
그는 그리스 작가들처럼 무사여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여하고, 그의 노래가 경건하며 참된 것임을 독자들이 믿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베르길리우스가 무사 여신을 부르는 것은 자신의 노래에 신비한 힘을 불어넣기 위한 기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노래가 신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도록 독자들에게 일종의 마법이며 최면을 거는 것이다.
우주의 변신을 노래하는 오비디우스, 그도 역시
베르길리우스보다 약 한 세대 정도 뒤에 활동한 오비디우스도 「변신 이야기」를 쓰면서 신의 가호를 비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도 천지창조의 노래를 불렀던 것을 따라 역시 세계 창조를 노래한다.
한갓 인간에 불과한 그가 어떻게 우주의 역사를 노래할 수 있을까?
험난한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것 같은 그 시가의 여정을 어떻게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새로운 몸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내 마음이 움직여 말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던 것이 아닌 것을 참되게 노래할 수 없으니, 변화를 일으킨 신들에게 직접 가호를 요청하는 것이며, 만약 오비디우스가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그가 틀린 부분을 신들이 바로잡아 줄 것이라는 주문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은 무사 여신의 가호를 받아 노래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며 자신들의 노래에 신비로운 힘을 불어넣기 위해 신들을 불렀던 것이다.
그로써 보통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특권을 부여받는 존재로서 자신들을 차별화할 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 신들의 섭리와 신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무사 여신들이 자신들을 도와주며, 자신들은 무사 여신들의 가호를 받는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을까?
아니면 독자들을 깜쪽같이 속이기 위해 무사 여신을 믿는 척했던 것일까?
독자들은 과연 시인들의 제수처를 그대로 믿었을까?
아니면 속아주는 척하며 함께 한 판을 흥겹고 신나는 신화를 즐겼던 것일까?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항상 어려운 일이나 고난 앞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적 상상력은 참 시대를 거슬러 위대하고 우린 그 신화를 보면서 즐기기만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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