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이어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에 대하여 소개하겠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뒤엉킨 사랑의 실타래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밤의 꿈'은 그리스 최고미녀로 꼽히는 헬레네와 이름이 같은, 그러나 결코 미녀가 아닌 여인이 남자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에 극이 시작한다. 그녀는 드미트리우스라는 청년을 사랑하지만 처음에는 서로 같이 사랑했지만 드미트리우스는 지금은 관심이 없고, 그녀의 친구인 허미아와 결혼하려고 안달이 났지만, 허미아는 이미 끔찍이 사랑하는 라이샌더가 있다. 드미트리우스가 헬레네를 버리고 느닷없이 허미아에게 들이대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고, 네 사람 사이의 문제가 풀리려면 드미트리우스가 처음처럼 헬레네를 사랑하면 된다. 이 꼬임을 풀기 위해 요정 나라 왕인 오베른이 나서서 팬지즙 <잠자는 눈꺼풀에 그 꽃 즙을 바르면 눈뜨고 처음 보는 생물에게, 남자든 여자든 미치도록 혹하게 만드는 >을 요정 퍽을 시켜서 드미트리우스에 눈에 바르고 그가 깨어나자마자 헬레네를 보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퍽은 실수로 라이샌더의 눈에 팬지꽃 즙을 발랐고, 실수를 깨달은 퍽은 드미트리우스의 눈에도 꽃 즙을 발라서 문제는 더더욱 복잡하게 꼬여서 이제는 마음이 바뀌어 둘 다 헬레네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어지럽게 뒤엉킨 사랑의 실타래는 어떻게 풀릴까?
팬지꽃이 뿜어내는 사랑의 마력
팬지꽃 즙은 어쩌다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힘을 갖게 되었을까?
큐피드가 한 소녀를 겨냥하여 사랑의 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이 소녀를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 팬지꽃에 맞았고, 그 빗나감 때문에 화살의 효능이 팬지꽃에 번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이 피어나는 현상에서 큐피드가 짓궂게 쏘아대는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화살의 이미지를 지우고 부드럽고 달콤한 팬지꽃의 이미지를 입혔다. 그렇다. 결국 셰익스피어의 상상력의 원천에는 그리스신화가 있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 공주
기원전 3세기 지금의 이집트땅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세계 최대 도서관이 있었는데, 아폴로니오스라는 사람이 도서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학자이며 작가였는데 그가 「아르고호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이 흑해 동쪽 끝에 있는 콜키스로 황금양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 이아손은 혼자 힘으로는 역경을 잘 이겨내지 못하고, 임무도 달성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 이전의 서사시에서 나오는 영웅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나 헥토르와 비교하면 한심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빼어난 외모를 이용하여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가 그에게 완전히 반해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던 것이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아손은 괴물이 지키는 황금양털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메데이아 공주는 이아손을 도와준 것일까? 아폴로니오스의 묘사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스다운 상상력으로 가능했다.
그녀는 왜 사랑에 빠졌나?
메데이아가 이아손을 보았을 때 일어난 현상의 원천적인 이유를 아폴리니오스는 에로스 신이 장난기 만발해서 에로스가 메데이아의 가슴에 화살을 쏴서 맞혔고 그곳에 이아손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 고유의 상상력이다. 메데이아가 주체하지 못할 사랑에 빠진 것은 인간인 메데이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초인적인 에로스(사랑) 신의 화살'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상상력 말이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익숙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익숙한 대로 세상만사가 굴러가리라 기대하면서 그러려니 살아간다. 그러다가 일상적인 기대를 벗어나는 충격적인 일을 만나게 될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테이오스'라는 형용사로 표현했는데, 이 말의 명사형이 '테오스'라는 '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현할 때 그 놀라움을 일으킨 테오스(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우리가 '신기하네'라고 할 때 신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신적인 존재를 암암리에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스 문학에서 '신'은 인간들의 능력과 이해의 한계 너머에서 작동하며 세상에 온갖 신비로운 현상과 사건을 일으키고 모든 존재를 생성하며 변형하는 요소로 등장하지만 신들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인간이 그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경우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들은 그런 전설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에 퍼뜨려놓고는, 자신들을 신비로운 힘을 가진 시인이라 하여 예언자와 같이 신들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것처럼 만들고, 또 자신들이 신비로운 존재로 행세할 수 있는 세상을 지어낸 셈이다. 그리고는 신들이 섭리하며 영웅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를 부지런히 지어내고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어 '신화'와 다름없는 꼴을 띠게 만들었다.
인간은 어떻게 신을 상상하는가?
① I love you. ② I feel love for you. ③ I fall in love with you. ④ Love leeds me to you.
①번 문장은 나는 '사랑하지만', ②는 나는 사랑을 '느낀다'이다. ①문장에서는 '사랑'이 내 속에서 내가 일으키고 느끼는 작용이나 상태, 움직임 자체지만, ②문장은 '사랑'이 대상화되면서 내가 더듬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나'와는 독립된 하나의 실체처럼 그려지고 있다.③문장의 사랑의 이미지는 '빠진다'라는 동사로 표현되며, '사랑'은 '안'에 라는 전치사와 함께 공간적인 표상을 갖고, 사랑이라는 수렁 속에 무방비 상태로 빠지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거기다가 ④번의 사랑은 나보다 힘센 어른처럼 나의 손목을 잡고 너에게로 데려가며, 사랑의 힘 앞에 속수무책이며, 사랑은 나를 이끄는 힘이고 능동적이며 강력한 실체가 된다. 이처럼 사랑은 처음에는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작용으로 표상되었지만, 곧이어 나의 느낌에 와닿은 것으로서 나로부터 구별되면서 대상화되더니, 나를 감쌀 수 있는 부피와 깊이를 가진 것으로 공간화되었고, 마침내 나를 끌고 다니면 길을 인도하는 능동적 주체로 실체화되었다. 나를 끌고 가는 힘이 강력하고 신비롭다고 느끼는 순간 '사랑'은 나의 힘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신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뮈토스'는 '신화'가 되었을까?
그리스 문학의 전통 속에서 사랑은 시인들의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신격화되었는데,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신비로운 '사랑의 신'이 인간 안에 불어넣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신비로운 운동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신화란 무엇인가? '서양말' 그리스 말로는 '뮈토스'이다. 뮈토스는 원래 '말'이라는 뜻이었지만 '사람의 말'이라는 게 직접 본 것조차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부풀리기나 축소하기를 포함할 수밖에 없고 세상을 왜곡하게 된다.
그런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참된 말은 없나? 그리스 사람들은 호메로스 시대 이후,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진리에 가깝도록 주의 깊게 다듬어지는 담론을 가리키는 말을 '로고스'라 하였고, '로고스'가 신뢰성 있고 논리적이며 진실을 담은 '말'을 가리키게 되고, 보고 들은 실증적인 것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을 '역사'라고 부르게 되자, 어느 순간 '뮈토스'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소문'이라는 뜻으로 변하게 되었고, '꾸며낸 말',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으로 '실제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요소들이 더욱더 많이 덧붙여지고, 상식선상에서 이해하기 힘든 충격적 요소들이 다량 첨가되면서 한 시대의 소문은 세대를 거치면서 '전설'이 되었고, 그 전설에 신들이 등장하면서 경이로움의 수준이 급상승하자 '신화'가 되었던 것이다.
누가 신화를 이야기하는가?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많이 등장한다. 아니 오히려 인간들이 주인공이다. 따라서 신화는 인간세계에 '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새겨질 수 있고, 인간들의 이야기에 신들이 개입하고 곁들여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누가 해주는가? 신이 인간에게 해주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인가?
신약성서의 상당 부분을 썼던 바울은 성경이 '신의 말씀'으로서 인간의 손을 통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신의 영'의 도움 없이 쓰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맞다면, 성경은 신이 인간에게 직접 해 준 이야기이다.
그리스 신화는 어떤가? 이것도 신들이 직접 인간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들이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어낸 이야기인가?
이걸 읽고 당연히 그리스 신화는 인간들이 지어낸 이야기인 게 분명하다..
고대부터 아주 유명한 작가들에 의해 지어낸 신적이야기가 시대를 거쳐 상상력을 발휘하여 더 신격화된 것이다.
신도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력인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성경은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는 게 첨만 다행이다.
그렇다.. 성경을 제외한 것은 어쩌면 다 인간들이 신비롭게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재밌다. 다음 편은 무사여신과 시인을 하려고 한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앉아서 하는 여행인 책에서 나를 돌아보며 적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나기-황순원 단편소설 (2) | 2023.05.24 |
---|---|
무사 여신과 시인 (0) | 2023.04.27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것 (0) | 2023.03.11 |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0) | 2023.03.10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장편소설 (0) | 2023.03.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