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4절 ~ 6절-
믿음이 천국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율법이 말했다.
"믿음이여, 우리 함께 여행합시다."
그러나 믿음은 거절했다.
"율법이여, 우리 함께 여행할 수 없어요. 당신은 가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에요."
하지만 율법은 큰 소리로 아무 걱정 하지 말라며 함께 여행하자고 계속 졸랐다.
믿음은 거듭해서 거절했지만, 율법은 막무가내로 믿음을 따라 길을 나섰다.
할 수 없이 믿음은 율법과 함께 천국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여행하다가 둘은 높은 산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율법은 소리쳤다.
"아~ 믿음이여, 나는 이 산을 도무지 넘지 못하겠어요. 우리 돌아갑시다."
그래서 믿음은 율법을 등에 업고 그 산을 넘었다.
거친 광야에서, 깊은 골짜기에서 율법은 몇 번이고 주저앉았지만, 믿음은 율법을 도중에 혼자 버려두는 것이 위험해서 매번 여러 모양으로 도움을 주었다.
마침내 둘은 저 멀리 천성이 보이는 깊고 넓은 강 앞에 이르렀다.
물결은 강둑을 넘실대고 있었다.
그러자 율법은 아예 낙담하고 기가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믿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더 이상 일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이 보기에 그 강은 별것 아니었다.
결국 믿음은 그 강을 건너 천국에 이르렀다.
그러나 율법은 여전히 강둑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강은 누구든 각자의 믿음으로만 건너야 하는 요단 강이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 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3장 19절~29절-
율법은 온전히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신의 죄 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율법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 율법은 필요하다.
율법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보여 줌으로써, 구주 예수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결국 율법에 정말 충실한 자들은 그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참된 구원과 치유함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이 율법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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